※이 글은 예전에 '카라연방군 사령부'가 폭파되기 전에 작성했던 글을 새로 쓴 포스팅 입니다. 폭파 이전에 썼던 글과 형식은 다르지만 이런 글을 썼다.... 식이니 뭐. ㅡㅅㅡ

1945년 당시만 해도 중화민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함께 세계 4대 강국이었고 국제연합 창립 국가였으며, 대일(對日) 승전국들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만주와 타이완을 되찾고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일본과의 15년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공산당과 내전을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중화민국의 군대인 중화민국 국군이 최신 미제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본군이 버리고 간 장비로 무장한 공산당군에게 패해 타이완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국부천대 이후 타이완 섬과 일부도서로 영토가 줄어든 중화민국은 국제적인 지위를 크게 위협받게 됩니다. 많은 국가들이 중화민국이 아닌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해 중화민국과 단교를 하고 있었고, 1972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UN에 가입해 중화민국을 대신한 상임이사국이 되면서 UN에 탈퇴, 국제적인 미아가 됩니다. 1979년에는 중화민국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미국이 단교를 하고 주중미군을 철수시킵니다.
이런 국제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권력을 유지했던 총통 장제스가 죽고, 옌자간이 총통대행을 한 뒤 그의 아들 장징궈가 아버지를 이어 총통이 됩니다. 장징궈가 죽은 후에는 타이완섬 출신 부총통이었던 리덩후이가 중화민국 총통에 오르게 됩니다.
장제스는 1975년에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륙이 광복하기 전까지는 외국방문을 하지 않겠다."라고 하여 죽기 전까지 외국방문을 하지 않습니다. 1949년에 한국을 방문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국민정부가 타이완 섬으로 쫓겨나기 전이었죠. 그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민국을 국빈방문 했을 때 장제스가 박정희의 답방 요청을 거절하고, 박정희가 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ㅡ.ㅡ

그러나 장제스가 죽으면서 총통이 된 옌자간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실권자이자 행정원장(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이었던 장징궈가 바지사장(...) 총통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중화민국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중화민국 총통이 타국을 공식방문하는 일이 줄어들지만 말이죠.

그런데, 장징궈 이후 취임한 리덩후이가 미국을 방문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때는 1995년 6월이었습니다. 당시 리덩후이의 미국방문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을 만나기 위한 공식방문이 아닌 개인적인 방문에 가까웠습니다. 아니, 개인적인 방문이라고 하지만 미국여행을 위한 승객들이 중화민국 정부의 각료들이었습니다(...).
당시 리덩후이의 미국방문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 큰 충격을 주는데, 이에 대한 경제적인 보복을 단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이 벌어진지 10년이 지난 2005년. 리덩후이의 미국방문과는 비교가 안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당시 중화민국 총통이었던 첸수이볜이 중화민국의 유일한 유럽 수교국이었던 바티칸을 공식방문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중공은.....[먼 바다]
관련기사: 리덩후이 총통 방미






덧글
바티칸에서는 절대 중궈하고 가까이 지낼수 없는 상황이죠. -_-;;;